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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트 게임 6 The Great Game 6 [사막이야기]

역사 위의 역사 HIS STORY

by Happy Sado 2020. 5. 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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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포팅어는 거대한 헬만드 사막의 동남쪽 모서리를 따라 걸으며 이 사막의 존재와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한 뒤, 다섯 명의 호위대를 이끌고 그들이 가로 질러야 하는 두 사막 가운데 첫 번째 사막으로 들어갔다.

 

**참고자료: 레기스탄 사막(Registan Desert)은 아프가니스탄 서남부 헬만드 주와 칸다하르 지역 사이에 위치한 건조한 고원지대이다. 입자가 고운 붉은 모래로 뒤덮인 모래 언덕 및 평원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암석 지형이나 진흙 지대 또한 발견되기도 한다. 기저를 이루는 언덕은 고대 사구 지형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서에서 동으로 부는 바람과 풍부한 모래량으로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종종 유목민인 발루치족 족 및 파슈툰인 족이 머무르기도 하며 사막의 면적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1]

 

다쉬테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라는 뜻을 가진 사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헬만드 주 및 님루즈 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사막은 카쉬 사막 및 레기스탄 사막과도 인접해 있으며, 면적은 약 150,000 km2 에 이른다. 이 사막은 해발 500–700 m의 고도에 위치하며 주로 모래, 암석 및 진흙의 토질로 구성된다. *** 위키피디아 정보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2사막, 레게스탄(Rigestan)사막과 다쉬테(Dashti) 사막/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C%89%AC%ED%85%8C_%EC%82%AC%EB%A7%89

포팅어는 곧 왜 이 사막들이 발루치스탄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악명을 떨치는지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몇 킬로미터 가지도 않아 그들은 고운 붉은 모래로 이루어진 거의 수직의 모래언덕과 잇따라 마주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거의 5-6미터 높이였다. ... "이 언덕들 대부분은 한쪽이 수직으로 서 있으며, 그 맞은편에서는 항풍(항상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분다.... 멀리서 보면 꼭 새로 세운 벽돌 벽 같다." 바람받이 쪽은 부드럽게 경사를 그리며 내려가 옆에 이어지는 모래언덕의 밑동에 이른다. 따라서 모래언덕 두 개 사이에 통로가 있는 셈이었다....모래언덕과 계속 맞붙어야 하는 싸움은... 짜증나는 붉은 먼지층이 사막 위를 떠돌며 눈, 코 , 입에 들어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갈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위 때문에 갈증은 계속 더 심해졌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폭 500미터의 메마른 강바닥에 이르렀다. 그 옆에는 그 무렵 버려진 마을이 있었다. 가뭄 때문에 사람들이 떠나버린 것이다. ... 한참을 파낸 끝에 간신히 가죽주머니 두 개 분량의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공기가 찌는 듯이 뜨거워지고 회오리바람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심한 폭풍이 뒤따랐다. "그렇게 큰 빗방울은 본 기억이 없었다. 주변이 완전히 깜깜해져 5미터 떨어진 것도 구분을 할 수 없었다."... 한여름에는 여행자들이 아예 지나다닐 수가 없었다. 이런 폭풍에 수반되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바람을 발루치스탄 사람들은 '불길' 또는 '역병'이라고 불렀다. 이 바람은 그 힘으로 낙타를 죽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산 채로 마구 때려 죽일 수도 있었다... 포팅어의 호위대의 말에 따르면 "근육은 경직되고 피부는 오그라들고, 마치 살에 불이 붙은 듯 몸 전체에 고통이 퍼진다...." 

그러다 한번은 낮의 끔찍한 더위를 피해 한밤중에 길을 떠나기로 했는데, 금세 길을 잃고 말았다.... 그는 호위대 모르게 나침반을 꺼내 억지로 유리를 뜯어낸 뒤에 엄지손가락으로 바늘을 만져보고 가야 할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해가 떠서 그 방향이 정확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호위대는 깜짝 놀랐다... 포팅어는 보통 지도를 그리면서 방향을 잡을 때만 몰래 나침반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두 번은 도저히 눈에 띄지 않게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키블라 누마(kiblah nooma), 즉 메카 지침이라고 말했다. 키블라, 즉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는 곳을 가리켜준다고 한 것이다. 그래야 기도할 때 어느 쪽을 향해 엎드러야 할지 안다는 이야기였다.

 

그날 그들은 19시간 동안 낙타를 타고 77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했다. 사람 낙타 할 것 없이 모두 지쳤다. ... 그래서 하룻밤 쉬어 가면서 남은 물을 나누어 마시고 식량을 먹지 않기로 했다....마크란이라고 알려진 지역의 쿨루간이라는 마을로 다가갔다. 무법 지대로 이름 높은 곳이었다.... 하지(Hajj :이슬람교도들이 하는 메카 순례. 또는, 그것을 한 이에게 주는 칭호. 이슬람력으로 그 해의 마지막 달의 7일에서 12일까지 계속되는데 이 순례에는 고난이 따르므로 마친 이에게는 존경이 표해짐. 이슬람교도라면 최소한 일생에 한 번은 완수해야 함.)로 변장하라는 명령을 받고...마을에 들어서자 이슬람 모스크 옆에서 낙타에서 내렸다.... 그들은 30시간을 굶은 터라 고맙게 잘 먹었다.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을 위해 식량을 사는 것은 어려웠다. 가뭄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했다. 따라서 시르다르(군 지휘관 호칭) 자신이 먹으려던 대추야자 몇 개와 약간의 보릿가루밖에 얻을 수가 없었다...73-76p

 

다음 날 시르다르는 포팅어에게 떠나기 전에 이슬람 모스크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하라고 제안했다.... 시르다르가 그를 데리러 숙소로 왔기 때문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시르다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냥 엎드리는 동작을 반복하며 혼자 아무 소리나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아무도 그를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밤새도록 낙타를 탄 뒤에 굴(Gull)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의 물라(아랍어: ملا‎, 영어: Mullah는 이슬람교의 법과 교리에 대해 정통한 사람을 가리켜 쓰는 존칭이다. 이란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종교 학자나 성직자에게 붙여주는 칭호로서 사용되고 터키에서는 재판관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가 그를 따뜻하게 영접하더니 아침식사에 초대했다....빵과 버터밀크가 담겨 있었다....식사를 마친 뒤에 한 남자가 포팅어에게 감사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예상도 못 하던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했다... 나는 아주 엄숙하게 분위기를 잡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의미를 담아 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 뒤에 몇 문장을 중얼거렸다." 포팅어는 주의를 기울여 알라, 루술(예언자), 슈크르(감사) 같은 단어들을 "상당히 또렷하게" 발음했다. 이런 단어들이 이런 기도에서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78-79p-

 

..."사람은 피로나 굶주림, 더위나 추위, 심지어 자연스러운 휴식의 완전한 박탈마저도 인내심과 희망을 가지고 상당한 시간 동안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목구멍이 "바싹 타고 메말라서 숨을 쉬기도 어려운 상태, 질식을 할까 봐 걱정이 되어 입 안에서 혀를 움직이기도 두려운 상태, 이 무시무시한 감각을 누그러뜨릴 수단이 없는 상태는.... 여행자의 재난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다."....-83p

 

...포팅어는 주로 밤에만 움직이며 이틀 동안 힘겹게 이동한 끝에 페르시아의 작은 국경 마을 레간에 이르렀다. 사막을 건넌 것이다....그 지방 수도인 케르만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이곳은 페르시아의 왕자가 다스리는 단단하고 커다란 요새 도시로, 아름다운 숄과, 화승총으로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유명했다.

 

케르만(Kerman)에 도착하기 전인, 페르시아국경도시인 레간(Persian: رگان‎, also Romanized as Regān)의 위치, a village in Kahnuk Rural District, Irandegan District, Khash County, Sistan and Baluchestan Province, Iran

 

"우리는 깊숙이 고개를 숙인 다음 앞으로 몇 미터 나아가 두 번째로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세 번째로 똑같이 절을 했는데, 그때마다 왕자는 약간씩 고개를 숙여 절을 받았다."... 포팅어는 왕자가 재판을 할 때, 구주브 포사크(Ghuzub Poshak), 즉 '복수의 옷'이라는 특별한 노란 가운을 입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지 않아 포팅어는 왕자의 교활한 행동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중년의 궁정 관리가 슬그머니 찾아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포팅어가 문을 닫자마자 손님은 기독교의 미덕을 찬양하는 긴 연설을 늘어놓았다. 마침내 그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싶다고 선언했다. 포팅어는 그 사람이 왕자가 보낸 공작원이라고 의심하고, 안타깝지만 자신에게는 그에게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가르칠 지식이나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문객은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현재 케르만에는 영국인들이 들어와 오아자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6000명 살고 있다고 했다. 그가 물었다. 영국군이 언제쯤 올 수 있겠습니까? 포팅어는 그런 위험한 대화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했다... 

 

 

1810년 6월 30일, 그들이 누시키에서 헤어지고 나서 석 달 이상 흐른 뒤의 일이었다. 크리스티는 발루치스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속하는 땅을 총 3620킬로미터나 돌아 다녔다. 포팅어는 그보다 260킬로미터를 더 돌아다녔다.... 왕립지리학회가 있었다면(20년 뒤에 창립되었다) 두 사람은 틀림없이 누구나 탐내는 탐험 금메달을 땄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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