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여름 나폴레옹의 군대가 파멸을 향해 행군하면서 통과했던 발트 해의 도시 빌뉴스(Vilnius, 리투아니아)에는 지금도 명판 두 개가 붙은 소박한 기념비가 서 있다...."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40만 명을 이끌고 이 길을 지나갔다." 그 반대편에는..."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9000명을 이끌고 이 길을 지나갔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대군단이 뿔뿔이 흩어져 러시아의 눈밭을 헤치며 되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차츰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 불을 놓은 사람들은 프랑스군이 아니라 러시아인들 자신이었다. 그들은 나폴레옹이 그곳에서 찾고자 했던 식량과 그 밖의 보급 물자를 태워버린 것이다...겨울이 다가왔고 식량이 바닥을 드러낸 지 이미 오래였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우선 스몰렌스크에서, 그리고 마침내 러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코사크 부대와 게릴라 무리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다가 곧 생존을 위해 말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적의 공격만이 아니라 동상, 질병, 기아로 수만 명씩 죽어나갔다. 네(Michel Ney) 장군의 후위대는 얼어붙은 드네프르 강을 건너다 얼음이 꺼지는 바람에 3분의 2가 익사했다... 알렉산드로는....유럽의 반을 가로지르며 프랑스군을 추격해 1814년 3월 30일 의기양양하게 파리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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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도깨비를 만들어낸 사람을 하나만 꼽으라고... 많은 훈장을 받은 영국의 장군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알렉산드로는 이미 자국의 방어에 필요한 것보다, 또 그의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그 수를 늘리고 있다."... 그가 러시아 왕좌에 있는 16년 동안 제국은 50만 제곱킬로미터가 늘었고, 백성은 1300만 명이 늘어났다고... 십 년 전... 차르의 군대가 불과 8만 명에... 그 수는 이제 64만 명으로 불어났다.... 게다가 일반 러시아 병사보다 "용감한 군인은 없었다." 그들은 잔인하기도 했지만, 다른 어떤 부대도 그들만큼 "행군하고, 굶고, 신체적 고통을 견디어내지" 못했다.... 94-95p
1812년 어느 달 없는 밤, 불과 스물아홉 살의 젊은 장군 코틀리아렙스키(Kotliarevsky)가 이끄는 소규모 러시아 부대는 몰래 아라스강을 건넜다. 알렉산드로스 대제 시대에는 아락세스 강이라 부르던 이 강은 현재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의 국경 역할을 한다. 강 건너편에는 샤의 고집 센 아들이자 상속자 아바스 미르자(Abbas Mirza)가 이끄는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숫자는 훨씬 많았지만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바스 미르자는 약화된 러시아군에게 거둔 이전의 승리와 러시아군이 그를 몹시 두려워한다는 보고(러시아군이 스스로 퍼뜨린 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에 도취해 있었다....
이제 영국과 러시아는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싸우는 동맹자 관계였기 때문에, 맬컴 고문단의 구성원들은 적대 행위가 벌어질 경우 정치적으로 불편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하여 배속된 부대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워낙 빠르게 기습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티와 린지는 명령을 무시하고 페르시아군과 함께 싸우기로 결정했다....아바스 미르자의 자기도취 때문에 그의 부대는 기습을 당해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틀리아렙스키는 이제 의기양양하게 눈을 헤치고 카스피 해를 향해 동진했다. 그곳에는 페르시아의 단단한 요새 렌코란이 있었다. 테헤란에서 불과 500킬로미터 거리인 렌코란은 그 무렵 영국 공병대가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건했다...그러나 코틀리아렙스키가 선봉에 선 러시아군은 닷새간의 유혈이 낭자한 전투 끝에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했다....
코틀리아렙스키에게 두 번이나 참담한 패배를 당한 페르시아는 이제 싸울 용기를 잃었다....러시아는 과거에 페르시아로부터 빼앗았던 영토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렇게 해서 1813년 굴리스탄 조약이 체결되었고, 샤는 아라스강 이북의 거의 모든 영토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샤는 그루지야와 바쿠에 대한 소유권만이 아니라, 카스피 해에서 군사적 활동을 할 권한도 포기했다. 그 결과 카스피 해는 러시아의 호수가 되었고, 차르의 군대는 인도 북쪽 국경으로 400킬로미터 더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나 샤는... 이 조약을 존중할 의사가 없었다. 그들의 즉각적인 진격을 막아줄 단기적 방편으로 보았을 뿐이다. 샤는 영국의 원조를 계속 받아 잠시 궤멸당한 군대를 가장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건하고, 적당한 때가 오면 잃어버린 땅을 모두 되찾기를 바랐다.... 그러나 샤는 머나먼 유럽에 있는 공동의 적을 마주한 영국과 러시아가 현재 공식적인 동맹 관계라는 사실, 그리고 평화적인 수단으로 러시아의 진전을 성공적으로 제어한 런던이 제3자의 시련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싸울 마음은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영국은 러시아가 캅카스에서 군대를 육성하는 것을 아직은 인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97-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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