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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트 게임 4 The Great Game 4 - 표트르(Pyotr)대제

역사 위의 역사 HIS STORY

by Happy Sado 2020. 5. 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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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처음 눈길을 돌린 차르는 표트르(Pyotr) 대제였다. 

그는 조국의 지독한 후진성과 더불어 침략에 대한 취약성(주로 몽골로 인해 '잃어버린 수백 년의 결과)을 고통스럽게 자각하고 있었다... 경제나 사회 면에서 유럽을 따라잡고 다른 열강과 맞먹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지만, 스웨덴, 터키와 전쟁하느라 국고는 비어 있었다. -38p-

 

... 그 무렵 중앙아시아의 옥수스(아무다리야) 강변에서 큰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곳은 러시아인이나 다른 유럽인들이 거의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외딴 적대 지역이었다. -38p-

 

***아무다리야 강(Amu Darya, 러시아어: Амударья, 페르시아어: آمودریا, Darya (바다를 의미함))은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해, 힌두쿠시 산맥을 빠져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국경 지대의 북서쪽에서 흐르는 이다. 고대에는 옥수스 강(Oxus), 중세에는 지훈 강(جيحون)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원래는 아랄 해로 흘러서 들어갔지만, 면화 재배를 목적으로 한 과도한 관개로 인한 사막화로 인해 현재는 사막 쪽에서 사라지고 있다. 연장 1450km (원래는 2400 km). "다리야"는 투르크어로 "강"의 의미이므로 "아무 강"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일부 구간은 우즈베키스탄 ·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으로 기능하고 있다.

 

https://github.com/EarthMC/Issue-Tracker/issues/367

 

 

 

...몇 년 전 히바의 칸이 표트르에게 접근하여 자기 지역의 말을 안듣는 부족들을 제압하는 데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히바의 칸은 옥수스(Oxus) 강을 둘러싼 사막 왕국을 다스리는 이슬람 군주였다. 칸은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자신은 봉신이 되겠다고 제안했다. -39p-

 

 

... 이 히바를 소유하면, 러시아의 영토와 인도 국경 사이의 넓은 지역 한가운데에 발판을 놓을 수 있는 것이고, 인도로부터 국내나 유럽 시장에 내다 팔 이국적인 사치품들을 싣고 올 러시아 카라반들이 머무는 중간 기지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육상 직통로를 활용하면, 인도에서 유럽까지 거의 일 년이나 걸리는 기존의 해상 교역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더욱이 우호적인 칸은 카라반에게 무장 호위대까지 제공할 것이니, 러시아 부대를 이용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영구적으로 칸을 보호하고, 그의 가문의 왕위 세습권도 보장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 칸이 마음을 바꾸거나,.. 원정대에 저항하면, 원정대가 끌고 가는 대포가 흙으로 지은 히바의 중세 건축물들을 날려버려 정신을 차리게 해줄 수 있었다. - 39p-

 

(happysado) 하지만 이건 이미 몇 년 전의 일이었고 히바의 칸은 많이 변해 있었다. 표트르가 보낸 4000명의 병사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캅카스 출신의 이슬람 군주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엘리트 부대의 친위연대의 장교인 알렉산드로 베코비치(Aleksandr Bekovich)공이 카스피해를 통과해 폭이 800킬로미터가 넘는 위험한 사막을 2달 동안 통과하면서 일사병과 질병과 작심하고 달려드는 그 지역 부족들과의 전투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아 히바의 수도까지 도달했지만, 칸이 직접 그들을 맞으러 나오는 것에 맘이 풀려버려 칸이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주게 된다.

 

칸은 히바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먹고 잘 수 없다고... 그러니 원정대를 몇 조로 나누어 수도 바로 바깥에 있는 여러 마을에 분산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베코비치는 칸의 비위를 맞추어서 표트르 대제에게 기쁜 소식을 속히 가져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동의를 해 버린다. 하지만 그의 부관인 프랑켄부르크 소령은 반대했지만, 결국 묵살당했고 그로 인해 그의 원정대는 40명만 살아남고 처참히 살해 당하고 말았다. -41-42p-

 

하지만 당시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중에 있어서 복수를 할 수 없었고, 이 팽창주의 정책은 40여년 뒤에 예카테리나 여제때 다시 발동한다. 이 때 인도를 침략할 계획들 중 최초의 것이 제안되었는데, 그것은 러시아 부대가 육로로 부하라와 카불을 넘어 행군하면서 무굴 왕조가 누렸던 이슬람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러 왔다고 선언하면서 침략로 주변의 이슬람 한국(칸국) 군대를 모으고 이 소문이 인도에 들리면 인도에서는 영국인에 대항한 대중 봉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예카테리나는 그 전임자 안나가 국고를 고갈시킨다는 이유로 페르시아에게 돌려주었던 캅카스 당을 페르시아로부터 다시 돌려받았을 뿐 아니라, 몽골 제국의 마지막 요새였던 크림도 손에 넣었다. 크림은 300년 동안 터키인의 보호를 받았다. 터키인은 크림이 점점 호전성을 드러내는 북방의 거인을 막아주는 귀중한 방패라고 여겼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이르자 한때는 도전적이었던 크림의 타타르인은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총 한 방 쏘지 않고 크림 한국을 자신의 제국에 보탤 수 있었다.... "우리가 크림인을 우리 백성으로 받아들인다는 발표문을 중요한 곳에 붙이는 것"만으로 이 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칭기즈 칸의 후예들은 자신의 괴로움이 터키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였다. -45p-

 

***크림반도와 러시아가 해군 병기고와 기지를 새로 지어 2일이면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수 있었지만, 변덕스러운 폭풍으로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통째로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아 버린 '세바스토폴' 항구

https://aroundck.tistory.com/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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