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도 허술한 데다가 귀중품을 싣고 게다가 금을 운반한다는 소문까지 도는 카라반을 끌고 아프가니스탄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일은 좋은 시절에도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보다 먼저 퍼진 황당한 소문 몇 가지는 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
한 가지 소문은 그들이 사실은 영국 침략군의 비밀 전위이며, 아프가니스탄을 합병하기 전에 정찰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141p
또 하나의 소문은 안전한 통행을 보장해주면 그 땅에 사는 부족에게 큰돈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수의사 무어크로프트의 솜씨 덕분에 친구들도 생겼다. 가축에게 생계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땅에서 수의사는 귀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가혹한 여름은 그들 모두에게 심각한 시련이었다. 심지어 개까지 영향을 받아, 두 마리가 일사병으로 죽기까지 했다. 무어크로프트는 열기가 마치 대장간 용광로에서 뿜어져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여행을 하면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지형, 야생동물과 가축, 농업과 문화유산에 관하여 메모를 많이 했다. 142p


마침내 카이베르 고개에 들어서고 나서 거의 8달이 지난 뒤, 일련의 힘겨운 장애물을 통과한 그들은 옥수스 강변에 이르렀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첫 영국인들이었다... 옥수스 강은 워낙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 강을 본 유럽인은 거의 없다. 그나마 대개는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의 타슈겐트와 카불 사이를 날아가다 공중에서 본다.... "물살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지 않았다. 시속 3킬로미터가 넘지 않았다. 강둑은 낮았다. 흙은 갠지스 강변의 흙처럼 푸석푸석했다. 물도 갠지스 강과 비슷하게 모래 색이었다."... 봄에 옥수스 강의 발원지인 파미르 고원의 눈이 녹기 시작하면 강폭이 2.5킬로미터에 이르는 곳들이 생기기도 했다. 크와자 살라에서는 바닥이 평평한 나무 보트들이 나룻배 노릇을 했다. 보트마다 말이나 낙타를 스무 마리 태울 수 있었다.
이제 겨울이라 눈 때문에 불편이 심해졌다. 사막은 종종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으로 변했기 때문에 카라반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애를 먹었다. 그들은 옥수수 강을 건너고 나서 닷새 뒤에 부하라 왕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카시에 도착했다....무어크로프트 일행은 이 도시의 왕자에게 인사를 하려고 궁을 향해 갔다. 그들은 진흙의 강을 헤쳐 나가야 했는데, 진흙 밑에는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구멍들이 숨어 있어 사람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143p
1825년 2월 25일, 무어크로프트 일행의 시야에 멀리 첨탑과 돔이 들어왔다. 그들은 그곳이 이슬람이 지배하는 중앙아시아 최고의 성도 부하라임을 알았다. 워낙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빛이 하늘에서 아래로 쏟아지지만 부하라에서는 빛이 위로 비추어 하늘을 밝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궁핍과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다녔던 도시의 성문 앞에 섰다."...다음 날 아침 도시로 들어서자 흥분한 아이들은 그들을 보고 "우루스... 우루스"하고 소리를 질렀다. "러시아인.... 러시아인" 이라는 뜻이었다. 무어크로프트는 그 순간 아이들이 이미 유럽인을 보았으며, 자신이 북쪽에서 온 적들보다 한 발 늦었음을 알았다.
무어크로프트는 곧 러시아인들이 적어도 4년 먼저 왔음을 알았다. 144p
외교와 교역을 목표로 한 러시아 사절단은 1820년 10월 오랜부르크에서 출발했다. 사절단은 차르가 아미르에게 보내는 아첨으로 가득 찬 편지를 들고 갔으며, 아미르는 자국 출신의 중개인을 통해 사절단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했다. 러시아인들은 또 일을 쉽게 하기 위해 총과 모피, 손목시계와 유럽산 도자기를 포함한 푸짐한 선물도 들고 갔다... 러시아의 공장들(이제 그 숫자는 5000개 정도로, 노동자 20만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은 새로운 시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국내 시장은 너무 작고 가난해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면 경쟁자인 영국은 더 고급스러운 기계를 사용해 유럽과 아메리카 양쪽에 싼값으로 물건을 공급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의 문간인 중앙아시아에 잠재력이 큰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시장은 워낙 외졌기 때문에 경쟁자와 마주치지 않았다. 영국이 중앙아시아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했다. 오래된 비단길의 시장들은 러시아 상품들로만 채워져야 했다.... 이것은 영국에서는 오직 무어크로프트만이 예측하고 있었던 무자비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무어크로프트 자신이 이제 이 머나먼 부하라에서 처음으로 그 과정을 직접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러시아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145p
사절 가운데 한 사람인 독일 태생의 의사 에페르스만(Eversmann)은 사절단과 호위대가 도시의 성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변장을 하고 수도로 들어가 아미르의 백성과 어울리며 정보를 수집하는 거의 자살에 가까운 시도를 했다. 아미르는 러시아인들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러시아인들은 그 말에 매달리지 않았다. 군주의 변심으로 히바 사절단이 학살을 당한 일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병과 보병 호위대 외에 강력한 대포도 2문 가지고 갔다. 여차하면 부하라의 진흙 성벽, 궁, 모스크를 파괴해버리려는 것이었다.
초원과 사막을 가로 질러 1600킬로미터를 행군하는 일은 사람이나 동물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러시아 사절단은 아미르의 영토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을 많이 잃었다. 그들은 우선 카자흐 사람들의 영토를 지나야 했다. 카자흐 사람들은 그들에게 성가시게 굴지는 않았지만, 사막의 어느 지점에서 100구의 시체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며, 약탈을 일삼는 카자흐 사람들을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카라반이 어떤 일을 당할지 보여주는 섬뜩한 증거인 셈이었다. 그들은 출발 후 두 달여 지나서 부하라의 첫 전초 기지에 이르렀다. 다음 날은 신선한 과일과 빵, 말먹이를 싣고 온 카라반과 만났다. 사려 깊게도 아미르가 보내준 것이었다... 나흘 뒤 그들은 수도의 성문 밖에 말을 세우고 아미르가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146p
에페르스만은 이때를 노렸다. 그는 '우루스'의 도착으로 훙분한 틈을 타 상인으로 변장하고 눈에 띄지 않게 도시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하고는 카라반 숙소에 묵을 곳을 구했다. 사절단과 호위대가 성벽 바깥의 마을에 묵는 동안, 이 수수께끼의 인물은 군사적인 문제에서부터 부하라 사람들의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내가 수치심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믿어지지 않는 사실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하라에서는 "콘스탄티노플에서도"금기로 여겨지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여졌던 것 같다. ... 이곳 사람들은 "세련된 정서" 같은 관념은 없고 오직 성적 만족만 추구했다... 아미르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페르스만은 아미르가 하렘 말고도 이 도시의 "타락한 존재들 40-50명"의 봉사를 즐긴다고 전했다. 이 도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온갖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일들"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에페르스만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는 질문을 하는 것, 심지어 산책을 하는 것조차 의심을 사 원치 않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썼다. 낮에 모은 정보는 "밤에 몰래"적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의사의 운도 결국 다했다. 오렌부르크에서 그를 본 적이 있던 부하라 사람 하나가 그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147p
그는 비밀경찰에 신고를 했다. 에페르스만은 원래 자신의 기록을 사절 한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자신은 중국령 투르키스탄의 카슈가르로 향하는 카라반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아미르는 러시아인들의 포리부동의 증거를 발견했지만, 그것 때문에 막강한 이웃과 막 수립한 우호적인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에페르스만이 일행과 헤어졌을 때 조용히 처리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자 에페르스만은 황급히 계획을 바꾸어 사절단과 함께 오렌부르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사절단은 자신들의 임무(도시 성벽의 평면도를 몰래 그리는 일도 포함하여)를 마치고 중앙아시아의 혹한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821년 3월 10일 러시아인들은 영원한 우정을 선언하고 아미르의 수도를 떠났다. 아미르는 이곳에서 거의 영국 제도의 크기와 맞먹는 왕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15일 뒤 그들은 아미르의 영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들 역시 히바의 무라비요프처럼 부하라에 노예로 있는 동포들을 두고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148p
무어크로프트... 많은 사람들이 그를 히말라야 발견의 아버지로 여긴다.... 그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음에도 그가 되풀이해 강조했던 러시아의 야심에 관한 경고가 현실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1,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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